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창진

金昌珍

1896. 11. 25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창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함북 경흥(慶興)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경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8)

관련 사건

  • · 서울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8) 1896년 11월 25일 함경북도 경흥군(慶興郡) 웅기면(雄基面) 웅상리(雄尙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사립경신학교(私立儆新學校) 중등과 4학년생으로 서울 안국동(安國洞)에 거주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하순 백광필(白光弼)과 사립중앙학교 학생 최석인(崔碩寅)·유연화(柳淵和) 등은 독립문제에 관한 여론 환기를 위해 지하신문인 『자유민보(自由民報)』 발간에 나섰다. 백광필은 유연화로부터 30원을 받아 인쇄 출판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유연화가 논설을 집필하고, 최석인이 그 외 기사를 작성하기로 하였다. 이들은 4월 1일부터 4월 중순 사이에 미리 구해 놓은 서울 훈정동(薰井洞) 5번지의 셋집에서 조선국민자유단(朝鮮國民自由團)의 이름으로 『자유민보』 제1호에서 제5호까지 약 1,000장씩 인쇄하였다. 유연화가 배포 책임을 맡아 광화문과 동대문 부근 민가에 배포하였다. 1919년 4월 1일부터 중순까지 유연화로부터 『자유민보』 제1호부터 제5호까지 매호 약 100매를 받았다. 그리고 이것을 하숙집 주인 최한석(崔漢錫)에게 다시 전달하며 배포를 부탁하였다. 이에 최한석은 『자유민보』 를 동대문 부근 등에 배포하였다. 이 활동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2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7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나의 행동은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인도에 기초하는 의사 활동으로 무죄”라며 상고하였지만, 1919년 8월 28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0년 2월 28일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주봉⋮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