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진
金春辰1863 ~ 1907. 11. 2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홍범도
- · 차도선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2) 1863년에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 안평면(安坪面) 노양촌(老陽村) 사득리(沙淂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대장장이로 아내 김씨와 장남 김창영(金昌英), 며느리 김씨 등과 함께 가난하게 살았다. 같은 동네에 사는 농민 김덕윤(金德允)·최윤학(崔允學)의 도움으로 마을 공금 13원을 빌려서 대장간을 열었다고 한다.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일제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이어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 해산시키자 전국적으로 의병들이 일어났다. 이때 함경도 지역에서는 홍범도(洪範圖)와 차도선(車道善) 등이 중심이 되어 의병을 일으켰다. 11월 홍범도는 차도선 등과 더불어 산포수 와 청년들을 규합하여 북청의 후치령(厚致嶺)에서 홍범도 의병부대를 결성하였다. 이 의병부대에서 제1분대(分隊) 참독(參督)의 직을 맡았다. 1907년 11월 16일 북청군 안평면에서 일진회(一進會) 회원이었던 주도익(朱道翼)을 처단하였다. 11월 19일 차도선 등과 일진회 회원인 안산면장 이쾌년(李快年)을, 20일 안산사에 거주하는 일진회 회원 최석우(崔錫禹)·이종현(李鐘鉉)·김창식(金昌植)·김창로(金昌魯)·이병필(李炳弼) 등 5인을 처단하였다. 11월 22일~25일 홍범도 의병부대의 후치령 전투에 참여하였다가 일본군과의 교전 중에 전사하였다. 가족들은 한동안 집을 떠나 피신하였다. 1908년 3월 부인 김씨가 돌아와 남은 가산을 처분하려고 하였다. 돈을 빌려주었던 지역민들의 반대로 가산은 다시 마을 공금으로 환수되었다. 결국 가족들은 이웃 양화면(陽化面)으로 이주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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