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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길

金春吉

187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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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춘길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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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울산(蔚山)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울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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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김기준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3) 1879년 경상남도 울산(蔚山)에서 태어났다. 활동 당시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범서면(凡西面) 무거리(無去里)에 거주하였다. 집안과 성장과정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1908년 3월경 울산에서 일어난 김기준(金基俊) 의병부대에 참가하였다. 김기준의 지휘 하에 십 수 명의 동료 의병들과 함께 1908년 3월 19일 언양(彦陽) 읍내의 순사주재소, 재무서, 우편소, 군(郡) 행정 부속 건물 등을 공격하였다. 3월과 4월 중 울산 각지에서 의병 활동을 위한 자금과 물자를 조달하였다. 이에 울산경찰분서(蔚山警察分署)는 일본인 순사 4명을 한국인으로 위장시켜 울산 각지에 파견하여 의병들의 동향을 염탐하였다. 1908년 7월 1일 울산군 농서면(農西面) 오정동(五政洞) 임달이(林達伊) 집에서 군자금 모집 중 일본인 순사의 기습을 받았다. 총격전 끝에 김기준과 김치옥(金致玉)이 붙잡혔으나, 다른 의병들과 함께 몸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추격에 8월 31일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08년 9월 9일 진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교수형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여 1908년 10월 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감형되어 종신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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