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복
金千福188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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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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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5)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 남이면(南二面) 팔봉리(八峰里, 현 충북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팔봉리)에서 출생하였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7년 당시 27세였던 점으로 미루어 봤을 때, 1881년생인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제국 시위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7월 일제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칠조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켰다. 군대가 강제 해산된 8월 1일 당일에 시위대 1연대 1대대장 박승환(朴昇煥)은 자결하였고, 해산에 반대한 2개 대대는 일본군에 맞서 서소문, 남대문, 종로 일대에서 시가전을 전개하였으나, 화력의 열세로 퇴각하였다. 상당수의 시위대 병력은 서울을 탈출하여 지방의 8개 진위대(鎭衛隊)나 의병에 합류하였다. 1907년 8월 그믐날 부대를 탈출하여 서울에서 건축 일을 하며 기회를 엿보았다. 수진궁동(壽進宮洞)(현 서울시 안국동 일대) 하숙집으로 돌아오던 중 친하게 지내던 해산 군인 김태선(金泰先)을 만나 향후 남도 의병에 합류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때 같은 근위대 출신 해산 군인 김영근(金永根)과 고향 친구 박계문(朴桂文)이 함께 유숙하였다. 그런데 김영근이 충청남도 온양의 사광천(史光千)과 미리 연락하면서 의병 합류를 협의하였던 사실이 일제 경찰에 의해 발각되어 함께 붙잡혔다. 1907년 11월 30일 평리원에서 이른바 내란죄라는 이유로 유형 5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신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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