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1916. 12. 13 ~ 1994. 9.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민족의식 고취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16년 12월 13일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황등면(黃登面) 율촌리(票村里)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안동환웅(安東桓雄)으로 고쳤다. 중농의 집안에서 태어나 전주고등보통학교(全州高等普通學校, 현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1938년 3월 경성사범학교(京城師範學校) 연습과를 졸업하였다. 졸업과 동시에 삼기심상소학교(三箕尋常小學校)의 교원으로 임용되었으나 1년 만에 사직하였다. 이후 경성약학전문학교에서 약 4개월 동안 약학을 연구하여 약제사(藥劑師) 학과시험에 합격하였다. 서울에 있는 제약소에서 일하다가 1940년 8월 전북 이리(裡里, 현 익산시) 해돋이 심상소학교 촉탁교원으로 재직하였다. 같은 해 11월에 약제사 실기시험에 합격한 후 대전(大田)과 전주의 각 도립병원에서 약제사 촉탁으로 근무하였다. 1942년 10월 31일 전주북중학교(全州北中學校) 촉탁교원으로 취직하였다. 전주북중학교 교원으로 재직하던 중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인해 국력, 특히 경제적으로 파탄한 일본은 결국 패전할 것이며, 점점 조선 독립의 호기가 도래할 것이다”라고 교육하는 등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독립의지를 양성하고자 하였다. 1942년 11월경에는 화학 강의를 하던 중 4학년생 김태기(金泰基) 외 45명에게 ‘수신(修身)교과서’에 대해 비판하면서, 학교에서는 “내선일체(內鮮一體)라고 가르치나 실제 사회에서는 전혀 다르며 내선이 차별되었다”고 하는 등 한민족의 번영과 일제강점기 한국의 현실에 대해 여러 차례 이야기하였다. 1943년 1월경 화학 강의 중 4학년생 약 50명에게 ‘현 시국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며, 조선 청년으로서 크게 분기해야 할 때’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일제강점기의 피폐한 농촌 현실과 일본인과의 차별 등을 비판하는 한편 아름다운 한국의 문화, 식민지배 하에 있는 한국의 상황 등을 설명하였다. 태평양전쟁에 즈음한 1942년~1943년 사이 일제가 자국에 부족한 고무와 석유 등 주요 군수물자를 획득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등을 점령했음을 지적하며 제국주의의 경제 침탈을 비판하였다. 동시에 석유 및 기타 전쟁 물자가 풍부한 미국과 영국에 비해 물자가 부족한 일본은 전쟁이 장기화되는 양상에서는 패전할 것이라며 일본의 패망을 여러 차례 이야기하였다. 이러한 교육을 받아 식민지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워나가던 전주북중학교 학생 박윤하(朴潤河)·김태기·최순기(崔淳基)·김병순(金炳純) 등은 1943년 1월경부터 징병제와 내선일체 등 식민지 현실에 대해 비판하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다짐하고 독립운동 방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 같이 전주북중학교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다가 1942년 10월 31일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4년 6월 1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및 육군·해군형법 위반 등으로 징역 5년을 받고 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으로 풀려났다. 해방 이후 약사로 일하다가 1960년 전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기도 하였다. 1994년 9월 12일 사망하였고, 대전국립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박윤정⋮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