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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영

柳在英

1889. 7. 23 ~ 1945.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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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류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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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沃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옥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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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8) 1889년 7월 23일 충청북도 옥천군(沃川郡) 옥천면(沃川面) 하계리(下桂里)에서 태어났다. 1911년 보성전문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고향으로 내려와 약종상(藥種商)을 운영하였다. 1936년 9월 25일 옥천 하계리에 소재한 중국인 포목점 여한주(呂漢洲)의 상점에서 『매일신보』제10433호 제1면에 게재된 ‘일본 수병(水兵) 3명이 중국인에게 저격당하여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게재한 부분을 보여주면서 여한주와 손성연(孫盛淵) 등에게 “요즘 중국과 일본 사이에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것은 일본이 중국인 일부의 악도(惡徒)들을 매수하여 일부러 사건을 야기 시킴으로써, 중국인으로부터 이권(利權)을 획득하려고 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러한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라고 소리 높여 말하였다. 이러한 발언이 빌미가 되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조사과정에서 “농지령(農地令)이 있어도 관공리가 이를 무시하고, 상급 관청이 심전개발(心田開發)을 부르짖어도 하급 관리가 쇄신되지 않으며, 일본의 정치는 외국으로부터 이권을 획득하는 일이 본래의 목적이라고 생각하였다”라고 말하였다. 1937년 10월 22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1938년 4월 12일 경성복심법원의 항소심에서도 이유 없음으로 기각되었고, 이에 불복하고 다시 상고하였지만 1938년 7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고, 1938년 11월 2일 만기 출소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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