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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호

權錫虎

1879. 1. 12 ~ 1961.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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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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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醴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예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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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79년 1월 12일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 용문면(龍門面) 죽림동(竹林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예천(醴泉)이고 호는 죽전(竹田)이다. 유생으로서 1919년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예천 권씨 집안인 권석인(權錫寅)이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하려고 서울에 갔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귀향하여 서울의 시위 상황을 전하였다. 이를 듣고 집안 사람인 권석효(權錫孝)·권세원(權世遠) 등과 본격적으로 만세 시위 계획을 세웠다. 권석인과 함께 사전에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여 각 동리에 배부하는 등 예천읍 장날인 3월 13일에 시위를 일으키고자 준비하였으나 일본 경찰의 감시가 삼엄하여 일시 중단하였으며, 이후 다시 한 차례 더 연기되었다. 4월 3일 장날을 거사 일로 정하고 이날 밤 10시경에 면소재지인 상금곡동에서 권석인·권세원 등과 함께 박태원(朴泰元)을 비롯한 금곡동 주민을 규합하여 만세 운동을 일으켰다. 권석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선창하자 주변에 모인 수백 명의 사람이 이에 호응하면서 행진하였다. 시위대를 선도하며 용문면사무소 앞길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쳤지만 출동한 일본 헌병에 의해 시위대는 해산당하였고, 이때 주도 인물 16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9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5월 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재판 과정에서 한국의 독립을 평소 희망하고 있었음을 일관되게 밝히면서 일제에 저항하였다. 저서로는 『금계유묵』과 『상제의』가 있으며, 1961년 사망 후 『죽전유고(竹田遺稿)』라는 문집이 출간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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