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일만
文一萬1904. 11. 9 ~ 1955. 5. 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옥구농민조합 서수지부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2)
관련 사건
- · 옥구 이엽사농장 소작쟁의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2) 1904년 11월 9일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현 군산시) 서수면(西穗面) 서수리(西穗里)에서 태어났다. 성장한 후 고향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7년 11월 옥구군 서수면 이엽사농장(二葉社農場)의 횡포에 반대하는 농민운동을 전개하였다. 1925년 12월경 옥구군 미면에서 옥구농민조합이 결성되고, 1927년 10월 2일 옥구농민조합 서수지부(瑞穗支部)가 결성되자 조합원으로 가입하였다. 당시 전북 일대에 많은 토지를 차지하고 있던 이엽사농장에 고율의 소작료를 착취한 데에 옥구지역 서수면 농민들이 저항하면서 소작쟁의 운동이 일어났다. 이때 조합원들과 함께 참여하였다. 1927년 11월 20일 옥구농민조합 서수지부 조합원들은 이엽사농장을 상대로 고율의 소작료 인하 교섭을 시도하였다. 이엽사농장이 가와사키농장(川崎農場)을 인수하며 갑자기 소작료를 60%에서 75%로 올리자 농민들이 고율 소작료에 저항하면서 납세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러나 농장 측은 농민조합의 교섭 요청을 완강히 거부하였다. 이에 농민조합은 농장에 도조 불납 통지서를 발송하였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11월 25일 조합 간부 장태성(張台成)이 임피경찰관 주재소에 붙잡혀 탄압을 받았다. 서수지부 농민들은 장태성이 군산경찰서로 이송되기 위해 서수면 임피경찰관 주재소에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진섭李(鎭燮)을 통해 알게 되었다. 11월 25일 저녁 9시경 옥구농민조합 서수지부 소속 농민 300여 명과 함께 임피역에 모여 임피경찰관 주재소로 몰려가 기둥 2개를 쓰러뜨리는 등 건물을 파괴하고 순사를 제압하였다. 그리고 장태성을 묶고 있던 포승줄을 칼로 끊고 만세를 부르며 동네로 돌아왔다. 그 날 저녁 10시경 100여 명의 농민들과 함께 박상호(朴相浩)가 붙잡혀 있던 서수경찰관 주재소로 가 박상호를 내어 놓으라 외치며 돌을 던져 건물 유리창 20여 장을 깨뜨리는 등 주재소를 공격하였다. 이에 순사들이 모두 달아났다. 이날 저녁 군산경찰서에서 수십 명의 경찰이 출동해 농민들을 검거하기 시작했다. 이 일로 옥구농민조합 서수지부 소속 농민 80여 명이 군산경찰서에 체포되었는데 이때 함께 붙잡혔다. 그 중 51명이 군산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이 가운데 34명이 이른바 소요, 구금자 탈취로 기소되어 1928년 2월 1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재판을 받았다. 이때 검사로부터 징역 6개월 형을 구형받았다. 1928년 2월 29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징역 4개월, 집행유예 2년을 받고 3월 2일 군산형무소에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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