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현
馬道賢1882. 1. 24 ~ 1951. 5. 1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장총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3)
관련 사건
- · 장총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3) 1882년 1월 24일 강원도 춘천군(春川郡) 북산면(北山面) 물로리(勿老里)에서 마정삼(馬正三)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마정삼(이명 마용기(馬龍奇))은 1896년 2월 충북 제천(堤川)에서 봉기한 유인석(柳麟錫)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이후 1906년에는 춘천을 중심으로 의병을 모집하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이다 1907년 강원도 인제에서 일본군에 붙잡혀 홍천군 두촌면(斗村面)에서 총살당한 인물이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동생 마만봉(馬萬奉)·마뇌병(馬雷柄), 처의 친족 박순구(朴順九)와 의기투합하여 일제 경찰을 처단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항일투쟁에 나설 것을 결의하여 1921년 9월 장총단(長銃團)을 결성하였다. 단원으로 외사촌인 안이순(安二淳)·안삼순(安三淳)·안귀봉(安貴鳳) 3형제와 인척인 전봉학(全鳳學)을 비롯하여 마남룡(馬南龍)·김석규(金錫奎) 등도 동조하여 총 12명이 구성되었다. 1921년 9월 6일 제일 먼저 마만봉과 박순구가 화승장총을 휴대하고 마정삼이 총살당한 홍천군 두촌면의 자은리(自隱里)에 있는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여 두 차례 총격을 가하였으나 일제 경찰을 처단하지는 못하였다. 장총단은 서양식 장총을 구하기 위해 1922년 10월 5일 춘천 동면(東面) 여안리呂(安里)에 사는 김영주(金泳柱)의 집에 침입하여 사냥총 한 자루를 탈취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6년간 인제의 가리산(伽里山)을 근거지로 삼아 춘천·인제·홍천·양구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24년부터는 부호들로부터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4년 9월 14일 마만봉·안이순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인제군 남면(南面) 어론리(於論里)에 사는 김수룡(金洙龍)의 집을 찾아갔다. 이때 집 밖에서 경계를 서고 군자금 36원을 징수하였다. 이후 장총단 단원들은 10여 차례 이상 강원도 지역 부호들을 찾아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위원이라고 하면서 군자금을 징수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였다. 일제 경찰은 장총단 단원들을 체포하기 위해 수색반을 편성하고 끈질긴 추적을 벌였다. 이로 인해 단원들과 함께 1927년 11월 붙잡혔다. 당시 신문지상에서 장총단 사건을 “6년에 걸친 활동으로 사건 기록이 수만 장에 달해 그 양만 조선공산당 사건에 버금간다”고 보도할 정도로,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항일투쟁이었다. 1928년 10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살인미수, 강도, 강도살인, 강도미수 등으로 징역 5년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1928년 12월 12일 경성복심법원, 1929년 2월 2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당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