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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수

柳年秀

1900. 10. 14 ~ 1953.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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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류연수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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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龍仁)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용인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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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에스페란토협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서울 안국동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0) 1900년 10월 14일 경기도 용인군(龍仁郡) 고삼면(古三面) 봉산리(鳳山里)에서 유근(柳瑾)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이명으로 유영효(柳英孝)·유천식(柳天植)을 사용하였다. 아버지 유근은 『황성신문』을 창간하고 만민공동회 간부를 지낸 언론인이자 계몽운동가이다. 1919년 창명인쇄소에서 근무하던 중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3월 유기원(柳基元) 등과 협의하여 서울 안국동(安國洞) 장날에 “경성부(京城府) 내의 각 조선인은 폐점 휴업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자”라는 취지의 격문을 군중들에게 배포하였다. 같은 해 9월 임봉순(任鳳淳)·박민오(朴玟悟)·김봉신(金奉信) 등의 동지들이 김가진(金嘉鎭)과 함께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한 후에는 이들로부터 『독립신문』, 『신대한』, 『혁신공보』, 『신한청년』 등의 간행물을 전달받아 이를 배포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동지 김영선(金榮善)·이임창(李壬昌)·김용인(金用仁) 등 3명이 경기도경찰부에 붙잡혔다. 이때는 붙잡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20년 9월 23~24일 마산(馬山)에서 정철주(鄭哲周)·이영진(李榮鎭)·이영국(李榮國)·김석조(金錫祚) 등과 협의하여 마산 오동동(午東洞) 이영진의 집에서 이홍래(李洪來)로부터 빌린 등사판으로 “경고문(警告文)”라는 제목의 격문 150매를 인쇄하였다. 이 경고문은 “만세를 외치자. 조선의 독립을 도모하자”라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또 태극기를 다수 만들어 마산 장날에 위 경고문과 함께 배포하고 조선독립만세를 부를 것을 계획하였다. 그런데 경고문과 태극기를 만든 다음 날, 일제 경찰이 이 계획을 탐지하고 있음을 알고 격문과 깃발을 모두 불태웠다고 한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1월 29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같은 해 7월 29일 안동감옥에서 출옥했다. 옥고를 치르느라 그 해 5월 20일 사망한 부친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였다. 1923년 활문사(活文社)라는 출판사에서 근무하였다. 이때 홍명희(洪命喜)·신봉조(辛鳳祚)·김억(金億) 등이 에스페란토를 연구하는 조선에스페란토협회에 관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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