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相駿
相駿1890. 2. 29 ~ 1951. 2. 2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태을교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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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9) 1890년 2월 29일 경상북도 달성군(達城郡) 해안면(解顔面) 검사동(檢沙洞, 현 대구광역시 동구 검사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태을교에 입교하여 약 1년여 간 국권회복과 독립군자금 및 교도 모집활동을 하였다. 태을교(太乙敎, 일명 흠치교(吽哆敎))는 1894년 동학농민전쟁 이후 급진적 성격을 지닌 강일순(姜一淳)이 1902년 창도한 증산교(甑山敎)에서 1919년 분리된 교단이다. 차경석(車京錫)이 교주(敎主)가 되어 교단을 이끌며 치성비(致誠費)라고 불리는 성금을 통해 독립군자금을 모집하고 교세를 확장하였다. 교주 아래로 60인의 고문을 두고 각 고문은 6인조를, 6인조는 다시 각 12인조, 12인조는 각 8인조, 8인조는 각 15인조를 두는 방법을 통해 전국적으로 대규모의 조직을 갖출 수 있었다. 또한 치성비 명목으로 6인조는 30원, 12인조는 15원, 8인조는 10원, 15인조는 5원을 거둬 종교 행사비를 충당하고 나머지는 본부로 보내 독립운동 자금으로 활용하였다. 1920년 (음)8월 인근 마을 유근성(柳根成)의 집에서 ‘일심동체(一心同體)’ 서약을 하고 태을교에 입교하였다. 12인조에 소속되어 활동하였으며, 태을교의 세력 확대를 위해서 조직원 모집에도 힘썼다. 교도들을 대상으로 “1924년(갑자년)에 교주 차경석이 계룡산(鷄龍山)에 수도를 정하고, 일본 통치로부터 독립할 것”이라며 독립의식을 고취하였다. 또 교도 홍길섭(洪吉燮)의 집에서는 “한국 민족으로서 일본에 지배당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독립된 이후에는 태을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국가건설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독립의식 고취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자신의 권유로 참여한 교도들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 일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붙잡혔다. 1921년 7월 8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당했고, 1922년 2월 2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옥고를 치르다가 1923년 7월에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서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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