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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문

權相文

1850. 12. 7 ~ 1931.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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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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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달성(達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달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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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파리장서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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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5) 1850년 12월 7일 경상북도 달성군(達城郡, 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면(花園面) 천내동(川內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목여(穆汝), 호는 해창(海蒼)·경재(耕齋)이다. 평안도 어사, 밀양부사, 경주부윤 등의 요직을 지냈고, 1901년 4월 중추원 의관(議官)에 임용되기도 하였다. 1919년 당시 경북 봉화군(奉化郡) 명호면(明湖面) 도천리(刀川里)에 거주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를 위해 파리강화회의가 개최되자, 유림은 이 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기로 결의하였다. 파리장서운동으로 불리는 이 운동은 유림이 주도한 가장 대표적인 3·1운동이다.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의 낭독을 직접 목격한 김창숙(金昌淑)은 유림 인사가 포함되지 않았음을 매우 아쉬워하였다. 이에 영남 유림의 종장이던 곽종석(郭鍾錫)에게 유림 주도의 청원서 제출 운동을 제안하였다. 파리장서운동은 척사(斥邪)의 기준이나 독립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 달리하였던 전국의 유림을 하나로 규합하는 역할을 하였다. 파리장서는 당초 영남 유림의 ‘곽종석본’과 기호유림의 ‘김복한본(金福漢本)’ 두 종류가 있었지만, 시한이 촉박한 상황에서 내용이 좀 더 ‘곽종석본’을 최종적으로 채택하였다. 서명자는 두 본의 명단이 통합된 것으로 총 137명이다. 『면우집(俛宇集)』의 「면우연보(俛宇年譜)」에 따르면, 열한 번째로 서명하였는데, 20위 내의 인물이 주요 인사로 평가된다. 안동 권씨는 성주 이씨, 밀양 박씨와 함께 가장 많은 서명자를 배출하였다. 또한, 대구·달성 지역에서 14명의 서명자가 나왔는데, 이는 16명을 배출한 경북 성주 지역 다음으로 많은 숫자이기도 하다. 청원서는 김창숙·박돈서(朴敦緖)가 상하이(上海)에서 파리강화회의 및 국내외 각종 기관으로 발송하였다. 이 파리장서 운동은 4월 2일 경북 성주에서 독립 만세 운동에 가담한 송회근(宋晦根)이 체포되면서 일제 경찰에 노출되었다. 6월 말까지 대대적인 색출 작업이 진행되어 서명자 대부분이 검거되었다. 이때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이후 강학과 학문에 힘썼다. 『해창일고(海蒼逸稿)』를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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