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수
都明洙1879. 6. 19 ~ 1976. 2.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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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8) 1879년 6월 19일 함경남도 홍원군(洪原郡) 홍원읍(洪原邑) 남당리(南塘里)에서 태어났다. 1909년 강우규(姜宇奎)의 도움을 받아 상업에 성공한 후 홍원읍내에서 덕흥상회(德興商會)를 운영하였다. 강우규는 평남 덕천 출신으로 1883년에 홍원으로 이주하여 한약방을 경영하며 상당한 재산을 모아 교육 계몽에 앞장선 인물이다. 1919년 6월 덕흥상회 원산(元山)지점으로 출장을 갔다가 강우규를 만나 서울에서 거사를 도모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5백원을 지원하였다. 1919년 9월 2일 신임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향한 폭탄 투척 의거가 일어나자, 자금제공 사실을 알고 있는 덕흥상회 직원의 밀고로 홍원경찰서에 붙잡혔다. 이때 강우규가 서울 구경한다고 하기에 노자 돈을 준 것이라고 거듭 주장하여 며칠 후에 풀려났다. 1919년 (음)7월 무렵 청년구락부장 김신근(金信根), 목사 한원칠(韓元七), 기독교인 강래구(姜來求), 금융조합장 한억환(韓億煥)·안억준(安檍焌)·정염구(鄭溓球)·최대용(崔大鏞)·김태균(金泰均) 등과 함께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군자금을 조달하는 활동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먼저 홍원의 유력 재산가의 집을 찾아가 독립운동 군자금 모집에 나섰다. 김신근과 정염구는 홍원군 주익면(州翼面)에서 북간도에 있는 대한군정서(大韓軍政暑)가 파견한 박용운(朴龍雲)에게 독립운동 군자금 모집의 임무를 부여받고 군자금 모집에 착수하였다. 김신근에게 이 사실을 전해들은 한원칠도 남중만(南重萬)에게 2원, 최봉학(崔鳳學)에게 5원을 모집하고 자신은 20원을 내놓았다. 김신근은 이를 받아 정염구에게 건네주었다. 정염구의 권유로 강협구(康莢球)는 러시아 화폐 6천 루블, 안억준은 5천 루블을 내놓았다. 이렇게 홍원에서 모은 군자금은 러시아 화폐로 2만 5천 루블에 달하였다. 이 돈은 국민회(國民會)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던 홍원군 출신인 한위건(韓偉健)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던 중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군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발각되어 1921년 3월 초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21년 4월 2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1년 12월 22일 만기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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