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盧衡奎

衡奎

1876. 12. 3 ~ 1947. 11. 27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盧衡奎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전남 화순(和順)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화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조선민족대동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화순군 만세운동
  • · 조선민족대동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6년 12월 3일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화순면(和順面) 광덕리(廣德里)에서 아버지 노학전(盧鶴甸)과 어머니 전주 이씨(全州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자는 은경(殷卿), 호는 몽암(夢岩)·동명(東溟), 이명은 노채필(盧埰弼)이다. 1908년 대한협회(大韓協會)에 가입하여 광주지회 법률부장을 지냈다. 1919년 화순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20년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 등에 나섰다. 1919년 3월 15일부터 시작된 화순 만세운동에 조국현(曺國賢)·조경환(曺景煥)·조기현(曺基賢)·조병렬(曺秉烈)·김세태(金世泰) 등과 함께 화순읍 앞에 위치한 갱미산(更美山)에 올라 태극기를 내걸고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화순 만세운동은 3월말에 다시 일어났는데, 이때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이후 서울과 화순을 오가며 활동하던 중 조선민족대동단(대동단)에 합류하게 되었다. 1920년 (음)4월 국내에서 대동단 재건과 상하이(上海) 연락을 담당하던 신덕영(申德永)을 만났다. 대동단은 1919년 3월 조직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연계를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친왕(義親王) 망명 등을 추진하던 중 실체가 드러나 조직에 큰 손실을 입고, 비밀리에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신덕영을 통해 대동단의 목표와 활약상 등을 접하게 된 후, 이에 적극 찬동하여 전남지역 활동을 주도하였다. 우선 신덕영을 광주의 지인 집에 피신시켜 은거하게 한 후, 같은 고향 동지인 노석중(盧錫中)을 신덕영에게 소개시켰다. 이후 전남지역 조직을 결성하며 본격적으로 군자금 모집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였다. 1920년 7월 대동단 총재 김가진(金嘉鎭) 명의의 「포고문」과 대동단 국내총지부장 한부(韓扶, 신덕영의 이명) 명의의 「우리 동포 재산가 여러분에게 경고한다」는 군자금 요구서를 가지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했다. 전남 광주·화순·담양 등지의 부호들에게 포고문과 편지 등을 보내 군자금을 요청하고 이후 직접 찾아가 임시정부에 자금 지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에 조직이 발각되어 붙잡혔다. 1921년 5월 3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 위반 및 공갈죄, 가택침입, 방화미수, 총포화약류취체령 시행규칙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항소하였으나 1921년 12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