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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규

金漢奎

1900. 1. 25 ~ 1961.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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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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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益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익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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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1900년 1월 25일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북일면(北一面) 신용리(新龍里, 현 익산시 신용동)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은 금림충치(金林忠治)이다. 전주 지역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이순명(李順明)·고정식(高貞植)·김진성(金振聲) 등과 함께 독립운동자금 모집을 계획하였다. 고정식은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서 독립운동을 위해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부친인 고갑준(高甲俊)에게 독립자금을 간청하였으나 거절당한 적이 있었다. 그러던 중 간도군정부 조선특파원으로 온 김진성과 뜻을 함께 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고정식의 제안에 따라 부친 고갑준에게 군자금을 모집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1920년 8월 14일 군산의 일본인 상점에 가서 완구용 육혈포 두 자루와 회중 전등 한 개를 사는 등 거사 준비를 하였다. 1920년 8월 18일 밤 전북 전주군(全州郡) 고산면(高山面)(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邑內里) 소재 고갑준의 집으로 가서 군자금 모집을 시도하였다. 김진성·이순명·김교우(金敎雨) 등 3명이 방안으로 들어가 고갑준에게 완구용 육혈포를 보이며 자신들은 임시정부의 내명을 받아 출장한 사람이라고 하며 군자금을 보태라고 할 때, 문 밖에서 망을 보았다. 이들은 고갑준에게서 군자금으로 현금 9,600원을 제공받았다. 일제 경찰이 이러한 사실을 탐지하고 검거에 나서 8월 22일 다른 동지들이 모두 붙잡혔다. 도피 생활을 하다가 고정식이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1922년 3월 2일 자수하였다. 1922년 4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강도죄로 징역 3년을 받고 항소하였다. 같은 해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옥고를 치른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으며, 1961년 5월 12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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