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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두

權相斗

1870. 3. 22 ~ 1936.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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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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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義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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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파리장서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5) 1870년 3월 22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단밀면(丹密面) 생송리(生松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군칠(君七)이며, 유학자이다. 전국 각지로부터 고종의 인산(因山)에 참여한 유림은 3·1운동 당시 서울의 분위기를 전국에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3·1운동의 전국적 확산에 이바지하기도 하였지만, 그 외에 유림이 3·1운동에 참여한 사례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파리장서운동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의 독립선언서에 각계 대표가 참여하도록 계획하였으나, 유림은 여기에 포함되지 못하였다. 3월 1일 선언서의 낭독을 직접 목격한 김창숙(金昌淑)·김정호(金丁鎬)·성태영(成泰英)은 영남 유림의 종장인 곽종석(郭鍾錫)에게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자고 제안하였다. 김창숙 등은 3월 3일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여 전국 유림을 상대로 청원서 참여를 설득하였다. 4월 4일, 청원서를 가지고 상하이(上海)에 도착한 김창숙은 11일에 영문본 3,000부를 마련하여 파리강화회의와 국내 및 해외 기관에 발송하였다. 이들의 노력은 당시 유림을 대표하던 전우(田愚) 학맥까지 포섭하는 데는 실패하였으나, 척사(斥邪)의 기준이나 독립운동에 대한 인식을 각기 달리하였던 전국의 유림을 하나로 규합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파리장서는 영남 유림의 ‘곽종석본’을 그 내용으로 하고 기호 유림의 ‘김복한본(金福漢本)’의 서명자가 통합된 형태다. 서명자 137명을 가리켜 ‘기미유림단(己未儒林團)’이라고도 한다. 4월 2일 서명자 중 한 사람인 송회근(宋晦根)이 경북 성주군 성주시장 만세 시위로 일제 경찰에 체포되면서부터 세상에 드러났다. 5월부터 서명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었는데, 이때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8월 9일 불기소로 출감하였다. 『면우집(俛宇集)』의 「면우연보(俛宇年譜)」에 따르면 서명 순위는 43위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청원서에 서명하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현재까지 출신지가 밝혀지지 않은 9명을 제외하고, 경북 의성 지역의 유일한 서명자다. 출감 이후 강학과 학문에 힘썼다. 1926년 출신지인 단밀면 생송리에 효심을 기리는 효자각이 세워져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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