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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致權

致權

1874. 11. 14 ~ 1943.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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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致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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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星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성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성주군 성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74년 11월 14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금수면(金水面) 어은리(漁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성주 지역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말 성주면에서는 두 갈래로 만세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먼저 초전면(草田面)과 월항면(月恒面)에 터를 잡은 송인집(宋寅輯)과 이기정(李基定) 등 유림세력은 서울에서 돌아온 이기원(李基元)을 통해 만세시위 소식을 알게 된 후 유력한 유림을 규합하여 4월 2일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한편 대가면(大家面) 옥화동(玉化洞) 교회의 조사 유진성(兪鎭成)은 교인과 접촉하면서 동지를 규합하고 만세시위 계획을 실행하였다. 이때 유진성이 설명한 독립의 대의와 당위성에 깊이 공감하여 만세시위에 적극 동참하기로 결심하였다. 이에 마을 주민과 다른 교인들에게 거사 소식을 전파하면서 동지를 찾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거사 준비에 참여하였다. 마침내 유진성은 유림측의 송회근과 만나 4월 2일에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합의하였다. 1919년 4월 2일 성주면 장날이 되자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장터로 나갔다. 오후 1시경이 되자 장꾼을 위시한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이때 성주읍 경산동(京山洞) 관제묘(關帝廟) 뒷산에서 유림측과 기독교측 주도자들이 시위대를 이끌고 합세하였다. 이렇게 운집한 시위대는 3,000여 명에 달하는 규모였다. 시위대는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오후 10시경까지 만세시위를 계속하였다. 이때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성주경찰서와 성주군청 앞까지 행진하였다. 대구에서 출동한 일본군 80연대와 다수의 일본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고 주도자를 검거할 때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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