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昌旭
昌旭1882. 12. 6 ~ 1935. 7.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온성군 영충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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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2년 12월 6일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 영충면(永忠面) 회덕동(懷德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며, 서당 교사를 겸하였다. 1919년 3월 30일 천도교인 전창우(全昌禹)가 집으로 찾아와 「독립선언서」를 보여 주면서, 온성에서도 만세시위를 전개하자는 제안을 하자 이에 찬동하였다. 다음 날인 4월 1일 전창우와 다시 만나 4월 4일 영충면 회덕동의 회동교(懷洞橋) 부근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대형 태극기 1개와 소형 태극기 35개를 제작하는 등 만세시위를 준비하며 박상원(朴尙元)·이근수(李根秀) 등 주변 사람들에게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1919년 4월 4일 오전 10시 회동교에는 250여 명의 군중이 결집하였다. 이때 전창우·안병손(安秉孫)과 함께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군중을 향하여 연설하고 대형 태극기를 높이 들고 앞장서면서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외치며 영충면 북창평동(北倉坪洞)에 있는 면사무소를 지나 북창평시장으로 행진하였다. 이때 북창평헌병주재소의 헌병 15명이 출동하여 시위대에게 해산을 종용하였다. 헌병들이 총칼을 휘두르자 시위대는 돌을 던지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저항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창우 등의 주도자와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25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그 해 5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9년 12월에 온성군 영충면 면협의회원(面協議會員)에 임명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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