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昌實
昌實1890. 5. 18 ~ 1940. 5.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파주군 와석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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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6) 1890년 5월 18일 경기도 파주군(坡州郡)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경기도 파주군 와석면(瓦石面) 교하리(交河里)에 거주하였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0일 파주군 와석면 교하리의 교하공립보통학교(交河公立普通學校) 운동장에서 구세군이었던 임명애(林明愛) 주도로 학생 1백여 명이 만세시위를 감행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와석면에서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결심하였다. 3월 25일 염규호(廉圭浩)·임명애 부부의 집에 염규호·임명애·김선명(金善明)·김수덕(金守德)과 함께 모여 격문을 배포하고 면민을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협의하였다. 그 자리에서 격문을 만들어 면민들에게 배포하기로 결정하고, 초안을 작성하였다. 염규호가 마련한 등사판으로 “오는 28일 마을 주민 일동은 윤환산으로 집합하라. 만약 이에 불응하면 방화할 것이다”라는 내용의 격문 60매를 인쇄하였다. 그중 20매를 맡아 당하리(堂下里)와 와동리(瓦洞里)에 배부하였다. 교하리 만세시위는 당초 계획보다 하루 앞당겨진 3월 27일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27일 오후 4시경 와석면 교하리에 약 700명의 군중이 모였다. 시위대가 와석면사무소의 유리창과 지붕을 파괴하고 면서기 2명에게 투석하자 면장은 도주하였다. 교하리 인근으로 만세시위가 확산되자 교하헌병주재소 헌병들과 파주군에서 지원 나온 헌병 3명 등이 진압에 나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1919년 10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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