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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섭
金昌燮1885. 3. 13 ~ 미상
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원곡면 양성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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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2) 1885년 3월 13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죽백리(竹栢里, 현 평택시 죽백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는 김명집(金明集)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1일 안성군 원곡면 칠곡리(七谷里)에서 시작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오후 10시경 2,000여 명에 달하는 시위대와 함께 양성면(陽城面) 동항리(東恒里)에 있는 주재소를 공격하였다. 이때 순사 1명과 순사보 2명이 지키고 있는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졌다. 그들이 도망가자 정호근(鄭鎬根)·서병돈(徐炳敦)과 함께 주재소의 서류와 가구를 끄집어 낸 후 소각하였다. 또한 홍근배(洪根培)·이양섭(李陽燮) 등과 같이 안성군 원곡면 죽백리에 머물고 있는 토지조사국 측량기사를 찾아가 독립만세를 부르도록 권고하였다. 측량기사가 권고에 응하지 않자 구타 후 포박한 다음 측량기계와 소지품을 불태웠다. 이날 만세시위에 참여한 이유로 체포되어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2년을 받아 형이 확정되면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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