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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서

具守書

1894. 6. 20 ~ 1950.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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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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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昌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창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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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경남 창원군의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4년 6월 20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진전면(鎭田面, 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봉암리(鳳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되던 시기에, 변상태(卞相泰)·권영대(權寧大)·권태용(權泰容)·황태익(黃泰益)·변상섭(卞相攝)·변상술(卞相述)·변상헌(卞相憲)·김영종(金永鍾)·변우범(卞又範) 등과 함께 1919년 4월 3일 구절구(舊節句)를 기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권영대·변상태·변상섭은 4월 2일 정오에 창원군 진전면 양촌리 토지개간장에서 80여 명에게 만세 운동에 참가할 것을 권유하였다. 권태용은 4월 2일 오전에 진전면 율치리의 김순삼 집에서 김영종에게 권유하여 동의를 얻어 4월 3일 아침 김순삼의 집에서 구한국 국기를 만들어 30여 명의 사람을 인솔하여 양촌리로 향하였다. 당시 봉암리 구장을 맡고 있었는데, 4월 2일 아침 진전면 봉암리 음식점 박영섭의 집에서 변상헌, 변상섭, 변상술에게 마을 주민들이 만세 운동에 참여하도록 해줄 것을 부탁받고 4월 3일 마을 주민 10여 명을 인솔하여 양촌리로 갔다. 변상태·황태익은 4월 1일 변우범의 집에서 만세 운동에 참가할 것과 이 운동에 사용할 구한국 국기를 만들 것을 권유하여 변우범은 거주지 마을 서당에서 국기를 만들어 마을 주민에게 배포하였다. 이리하여 주도자들과 함께 모인 군중 1,500여 명은 국기를 앞세우고 대한 독립 만세를 연호하면서 양촌리에서 진동면을 향해 열을 지어 나아갔다. 군중은 진동헌병주재소로 몰려가서 돌을 던지고 일본 헌병들을 폭행하였는데, 일본 경찰이 발포한 총에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진북면 사동리 다리에서 일본 경찰의 제지로 해산하였다. 이 시위의 주도자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공판에 회부되었으나, 재판관할권 문제로 실제 판결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19년 11월 6일 부산지방법원은 본 사건이 해당 법원 관할이 아니라 고등법원에서 취급해야 한다고 판결하였으나, 결국 1920년 10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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