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찬
金辰贊1904. 10. 13 ~ 1968. 11. 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창원군 웅천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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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8) 1904년 10월 13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웅천면(熊川面) 서중리(西中里, 현 창원시 진해구 서중동)에서 태어났다. 김봉대(金鳳大)라는 이명이 있다. 1919년 창원 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4월 3일 웅천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는 웅동면(熊東面)에 있는 사립 계광학교(啓光學校) 교사인 주기용(朱基溶)이 웅천면을 방문해 두 면의 연합 시위를 제안하면서 본격적으로 준비되었다. 주기용의 방문 후 김창업(金昌業)·정운조(鄭雲朝) 등 웅동면 주민들과 함께 북부리(北部里) 김재형(金載亨) 전 웅천군수의 자택에 모여 만세시위를 논의하였다. 거사일은 음력으로 삼월 삼짇날인 4월 3일로 정하였다. 1919년 4월 3일 오전 11시 웅천읍성 근처 우시장에서 웅동면 주민들이 나타나지 않은 가운데, 500~600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김창업이 독립의 당위성에 대해 연설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독립만세를 삼창하자 이에 호응하며 군중들과 함께 시위행진을 시작하였다.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치며 헌병주재소가 있는 웅천면으로 행진하였는데, 도중에 많은 사람들이 합류하면서 시위대는 3,000명으로 늘어났다. 읍내 동문 거리에서 서문 거리를 오가며 만세시위를 벌이고 있을 때 웅동면에서 온 시위대가 도착하여 합류하였다. 경찰과 헌병이 시위대 해산을 시도하며 끌고가자 오후 2시 반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이날의 시위에 참여한 일로 붙잡혀 1919년 5월 2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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