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益洙
益洙1900. 7. 16 ~ 1968. 3. 2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수양단
- · 건아단
- · 계림농흥사
- · 조선개척사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수원고농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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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00년 7월 16일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 공산면(公山面) 신곡리(新谷里)에서 태어났다. 1926년 수원고등농림학교(水原高等農林學校, 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으로 병합, 이하 수원고농) 농과(農科)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1926년 6월 수원고농 학생들이 교사 신축 등을 내걸고 동맹휴학을 단행하자 학교 측은 전교생에게 무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동맹휴학 문제는 학부모들의 항의와 수원군수의 중재로 해결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사회와 민족에 관한 문제의식이 뚜렷해졌다. 그 후 1926년 여름방학 때 김성원(金聲遠), 김찬도(金燦道) 등이 주도한 한국인 학생 모임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기숙사에서 공인해 준 조선인학생담화회(朝鮮人學生談話會)를 매개로 수양단(修養團)을 조직하였고, 나아가 수원고농 내에 김찬도를 지부장으로 한 조선농민사 지부를 설치하였다. 수양단은 학교 인근인 수원군 고색리(현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 예수교회에 고색리야학을 설치하였는데, 김성원·권영선(權永善)·조제하(趙濟河)·백세기(白世基) 등과 함께 교사로 참여하였다. 수양단원들은 1927년 6월 수양단을 “농민대중을 개발시켜 신조선을 건설하자”는 강령 하에 건아단(健兒團)이라는 비밀결사로 개편하고 단군기원을 사용하는 등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섰다. 이때 우종휘(禹鍾徽)·김익수(金益洙)·남영희(南榮熙)·육동백(陸東百)·이종린(李鍾麟)·한전종(韓典鍾)·조제하·고재천(高在千) 등 27명과 함께 단원으로 참여하였고, 그 뒤 1928년 4월 14일 개최된 건아단 총회에서는 단장으로 선출되었다. 건아단 결성 이후 단원들이 1928년 6월 도쿄(東京)에 본부를 둔 조선농우연맹(朝鮮農友聯盟)의 목표가 건아단과 일치한다고 판단하여 조선농우연맹의 지부로 가입하였을 당시 건아단 단장의 자격으로 한전종을 조선농우연맹 조선강연단에 파견하였다. 그런데 순회강연에 참여한 한전종이 강연 도중 연설을 제지당하고 학교로부터 무기정학을 당하자 건아단은 이를 긴급한 문제로 인식하여 조직을 계림농흥사(鷄林農興社)로 개편하였다. 한편 수원고농 학생운동의 중심인물이었던 김성원은 졸업 후 김해공립농업학교(金海公立農業學敎, 현 김해생명과학고등학교)의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수업 중의 발언이 문제가 되어 일제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이때 우종휘와 주고받은 편지가 발각되어 계림농흥사가 위기를 맞자 구성원들은 조직을 조선개척사(朝鮮開拓社)로 개편하였다. 조선개척사는 회원 자격을 한국인으로 제한하였으며, 신간회 강령 준수 등 3항의 실무 원칙을 바탕으로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28년 9월경 김성원 사건이 확대되어 경찰에 조직이 발각되면서 조선개척사 구성원들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때 동료들과 함께 붙잡혀 1928년 9월 15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체포 직후 학교 측으로부터 퇴학당하였다. 옥고를 치르던 중 1930년 2월 20일 예심결정 결과 증거 불충분으로 면소(免訴)되어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성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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