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와
金贊臥1872 ~ 1908. 12.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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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3) 전라남도 순천군(順天郡) 쌍암면(雙岩面) 무학리(舞鶴里) 출신이다. 정확한 출생 일자는 알 수 없지만, 1908년 순천경찰서장이 내부 경무국장에게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37세라고 기록되었다. 이로 미루어볼 때 1872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08년 고향인 순천지역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1907년 8월 헤이그특사 사건으로 광무황제가 강제 퇴위당하고 대한제국 군대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 당하게 되자 전국적으로 의병항쟁이 일어났다. 전남 지역에서는 기삼연(奇參衍) 부대·심남일(沈南一) 부대·안규홍(安圭洪) 부대가 지속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순천군 쌍암면에 사는 동지 4명과 의기투합하여 의병부대에 가담하였다. 선학리(仙學里)에 사는 김찬명(金贊明)과 칠성리(七星里)에 사는 김명숙(金明叔), 죽림리(竹林里)에 사는 김윤화(金允化), 신창리(新蒼里)에 사는 강구이(姜九伊) 등이 그들이다. 가담한 의병부대가 정확히 어떤 부대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부장(副將)직을 맡아 부대원들을 통솔하고 순천군 일대를 돌며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1908년 12월 25일 정보를 탐지한 순천경찰서는 일본인 순사 2명, 한국인 순사 5명, 수비대 병사 3명으로 체포조를 조직하였다. 오전 7시, 동료들과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이들의 급습을 받았다. 한국인 순사를 격투 끝에 물리치고 1,000m를 도주하였으나, 결국 일경에게 총살당하고 말았다. 동료였던 김윤화는 현장에서 붙잡혔고, 나머지 동료들은 이를 틈타 피신에 성공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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