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金煥基1909. 1. 21 ~ 1927. 12.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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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09년 1월 21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대가면(大家面) 칠봉리(七峯里)에서 김창숙(金昌淑)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김창숙은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전국의 유림대표 137명의 연명을 받은 「독립청원서(獨立請願書)」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갔으며, 이후 독립청원서 발송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참여,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등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1924년부터는 새로운 독립운동기지로 동삼성(東三省) 일대에 재만 한인동포들의 집단 거주지를 조성하고 청장년을 훈련시켜 독립군으로 양성한 뒤 국내로 진공하는 독립전쟁 방략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전달받아 국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였다. 1925년 봄 불교계 독립운동가인 김상호(金尙昊)와 함께 베이징(北京)으로 건너와 아버지를 만났다. 김창숙에게 “가족은 간신히 생명을 보전하고 있으며, 국내 인심은 모두 죽어 자금을 구해도 응하지 않았고, 약간 입수한 것은 김상호가 써버렸다”고 고백하였다. 김창숙은 중국어와 영어를 강습시켜 베이징에 있는 중학교에 보낼 계획을 세웠지만, 당시 상황과 건강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1926년 7월 병이 들어 귀국하였다. 그러나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베이징으로 건너가 김창숙을 만난 사실이 발각되면서 붙잡혔다. 고문으로 병이 더욱 깊어져 가출옥하여 치료를 받던 중 1927년 12월 20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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