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
金泰碤1924. 3. 25 ~ 1945. 7.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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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924년 3월 25일 전라북도 금산군(錦山郡, 현 충청남도) 금산면(錦山面) 하옥리(下玉里)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으로 금전태영(金田泰碤)을 사용하였다. 소위 ‘해군애국작업단원(海軍愛國作業團員)’의 일원으로 남태평양에 위치한 오리마이 제도에 끌려가서 강제 노동을 하다가, 병을 얻어 1942년 3월 21일에 귀국하였다. 1943년 2월, 일제의 식량 공출에 격분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1944년 3월부터 6월까지 3개월 여 동안 동지들을 모아 김수동(金水同)의 집에서 함께 지내며 13차례에 걸쳐 모임을 열었다. 이들과 함께 독립운동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지속적인 협의를 하였다. 일제의 식량 공출을 저지하기 위해 일경과 식량공출을 담당하는 직원을 처단하기 위해 철로에 멍석을 깔아 일본군 병력 수송 열차를 전복시킬 계획을 세웠다. 이뿐 아니라 독립운동가들과 규합하여 ‘조선청년들아 단결하자’라는 내용의 벽보를 각지에 써 붙였다. 또한 만주의 독립군과 연락하여 독립전쟁을 전개하기 위해 동지들과 함께 일본군에 입대한 후 전선에서 일본군을 반격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방안을 계획하였다. 이러한 계획은 실천에 옮기기 전에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1944년 7월에 붙잡혔다. 1945년 5월 23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1945년 7월 20일 고문 후유증으로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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