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근
金泰根1915. 4. 15 ~ 1963. 12. 1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양산농민조합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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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7) 1915년 4월 15일 경상남도 양산군(梁山郡) 웅산면(熊山面) 삼호리(三湖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성태(金成泰)이다. 1930년대 초 양산지역에서 농민운동에 나섰다가 붙접혀 옥고를 치렀다. 1931년 4월 이귀운(李貴云)·박무실(朴武實)·박금준(朴今俊) 등이 양산농민조합(梁山農民組合)을 조직하였다. 양산농민조합은 창립 직후부터 고율의 소작료 징수에 반대하는 한편, 고리대금업 철폐 등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 해 10월 양산에서는 흉작임에도 동양척식회사와 지주들이 고율의 소작료를 징수하려 하였다. 이에 양산농민조합원들은 대대적으로 항의를 하였으나, 일본 경찰은 오히려 조합원들을 탄압하였다. 이로 인해 양산지역 농민들의 항일의식은 더욱 고양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양산농민조합은 조직을 확대해갔다. 1932년 2월 양산농민조합은 전병건(全秉健)을 집행위원장으로 선출하고, 소년부와 청년부 등을 설치하며 농민운동의 확산을 도모하였다. 이때 신설된 소년부에서 최달수(崔達守) 등과 함께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특히 1932년 3월 중순부터 일제는 1931년부터 지속된 양산농민조합 항쟁을 탄압하기 위해 조합 간부들을 대대적으로 체포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분개한 농민조합원들은 3월 16일부터 시위를 일으켜 양산경찰서를 습격하여 구금된 간부를 구출하려 하였다. 이때 남부동 일대의 군중 수십 명을 한데 모아 시위대를 조직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튿날 이어진 2차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시위 주도자라며 일본 경찰의 취조를 받으며 고초를 겪다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32년 12월 27일 이른바 ‘소요’란 명목으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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