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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원

金春園

1891. 2. 23 ~ 1943. 6. 19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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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내항일

지도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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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김상옥의 폭탄 투척 사건 연루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1년 2월 23일 서울 종로구(鐘路區) 창신동(昌信洞)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 김상옥(金相玉)의 친동생이다. 김상옥과 함께 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김상옥의 뒤에서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1920년 6월 친형 김상옥의 독립운동 활동을 돕겠다는 일념으로 가업으로 내려오던 철물점(鐵物店)을 담보로 잡히고 2,000원을 독립운동자금으로 제공하였다. 당시 김상옥은 1920년 4월 의열투쟁을 지향하는 비밀결사 암살단을 조직한 상태였다. 이때 형 김상옥의 의열투쟁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을 제공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뿐 아니라 같은 해 10월, 김상옥이 해외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한 이후에도 수차례에 걸쳐 상하이에서 국내로 잠입한 인편을 통해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는 등 김상옥의 독립활동을 지원하였다. 1923년 1월 12일 밤 8시경 누군가가 종로경찰서 서편 창문을 향해 폭탄을 투척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즉각 수사를 개시한 일제 경찰은 김상옥이 입국한 사실을 탐지하고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여 체포하고자 하였다. 김상옥은 군자금 모집을 위한 작탄투쟁을 위해 입국한 후 삼판통 고봉근의 집에 은거하며 사이토 총독 저격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김상옥은 은신처를 습격한 일본 경찰을 따돌리고 탈출한 후 효제동 이혜수의 집에 숨어들었다. 1월 22일 새벽 일본 경찰 수백 명이 이혜수의 집을 포위하고 체포를 시도하자 김상옥은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대격전을 벌였고 탄환이 떨어지자 최후의 일발로 자결하였다. 이 사건에 연루되어 붙잡혔다가 1923년 2월 28일에 석방되었다. 형 김상옥과 그의 독립운동 참여로 가세가 기울어 1927년에는 가업이던 철물점이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는 등 곤란을 겪었다. 이로 인해 노모와 대가족의 생활은 점차 곤궁해졌고, 결국 막대한 부채 등으로 인하여 가문이 파산하는 일이 벌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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