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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昌福

昌福

미상 ~ 1919.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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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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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홍원(洪原)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홍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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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홍원군 홍원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함경남도 홍원군(洪原郡) 출신이다. 1919년 3월 함경남도 홍원군 홍원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홍원군의 만세시위 준비는 천도교인들이 주도하였다. 천도교 홍원교구의 강인택(姜仁澤)은 안상덕(安商悳)으로부터 홍원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라는 지시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다. 3월 7일 천도교 홍원교구 지도자들은 주익면(州翼面) 성동리(城東里) 장날인 3월 16일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천도교인들에게 참여를 권유하였다. 1919년 3월 16일 주익면 성동리 장터에는 수백 명의 군중이 운집하였다. 오전 11시 천도교인들이 공성상회(共誠商會) 앞에서 집회를 개최하였다. 궤짝으로 만든 단 위에 올라선 강인택과 김상봉(金相鳳)이 연설하였고, 천도교인들은 스크럼을 짜고 연단을 둘러쌌다. 연설이 마무리되자 강남섭(姜南燮)과 깃발을 든 김기흥(金基興)을 선두로 700여 명의 군중들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만세시위에 가담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홍원군청까지 행진하였다. 홍원군청 앞에 다다른 시위대는 더욱 큰 소리로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에 경찰은 시위 주도자 등에게 붉은색 잉크를 뿌리면서 해산을 촉구하였다. 이때 붙잡혀 고문에 시달리다 1919년 3월 21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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