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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

金辰成

1870 ~ 1919.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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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진성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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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주(楊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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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관련 사건

  • · 양주군 광적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5)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광적면(廣積面) 효촌리(孝村里)에서 태어났다. 자료에 따르면 1919년 당시 50세로, 1870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양주 지역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일제 경찰의 총탄에 희생되었다. 양주군 군서기관 출신 백남식(白南軾), 효촌리 향반 이용화(李龍和) 등과 함께 1919년 3월 28일 광적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이들은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는 사발통문을 인근에 돌렸다. 그리고 마을 안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에게 시위 계획을 알리고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또한 일장기를 변조하여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만세시위를 위한 물품을 준비하였다. 1919년 3월 28일 효촌리에서 9시에 시작하려던 만세시위는 민가의 화재로 인해 점심시간 이후로 연기되었다. 효촌리 주민들을 이끌고 장고개를 넘어 4km 정도 떨어져 있는 가납리(佳納里)의 광적면사무소(廣積面事務所)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이때 광적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하고 해산하려던 광적면·백석면(白石面) 주민들이 다시 가담하였다. 시위대는 순식간에 9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후 4시경 시위대는 광적면사무소 일대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다가 의정부에서 급파된 일본 헌병에 의해 해산되었다. 시위대는 가납리의 추교시장에 집결하여 다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일본 헌병이 해산을 협박하자 시위대의 선두에 있었던 이용화가 태극기를 들고 헌병 앞으로 가서 헌병을 꾸짖었다. 일본 헌병을 따라왔던 면장 이하용(李河鎔)이 도망가려고 하자 시위대는 일본 헌병과 면장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일본 헌병은 일단 후퇴하였다가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시작하였다. 이때 이용화, 백남식과 함께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전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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