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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직원

金直源

1897. 2. 17 ~ 1933.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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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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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대전(大田)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대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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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대전군 대전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7년 2월 17일 충청남도 대전군(大田郡) 산내면(山內面) 삼괴리(三槐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대전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1일을 기해 만세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대전에서는 대전면(大田面)에 자리한 대전시장을 중심으로 3월 초부터 만세운동이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3월 31일 산내면 삼괴리 자택에서 박종병(朴宗秉)과 함께 4월 1일 대전시장 장날을 기해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한 후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1919년 4월 1일 대전시장으로 나아가 장날 모인 군중들에게 만세시위를 함께 할 것을 연설해 설득하고, 준비한 태극기를 나누어주었다. 이에 1,500여 명의 군중들이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함께 외치며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일본 경찰들이 해산을 강요하자 시위대는 투석으로 맞섰다. 일본 경찰이 시위대와의 충돌 과정에서 부상을 입자 헌병과 군인이 출동해 발포하면서 시위 군중 4명이 사망하였다. 이 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붙잡혀 1919년 4월 18일 공주지방법원 대전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3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를 제기하여 그 해 5월 1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0월로 감형되었다. 다시 고등법원에 상고하면서 “자신의 행위가 모두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 인도에 기초하는 의사 발동이므로 범죄가 아니며, 따라서 유죄 판결은 부당하고 복종할 수 없는 위법”이라고 상고 취지를 밝혔다. 1919년 6월 12일 고등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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