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황
金泰璜미상 ~ 1919. 3. 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8)
관련 사건
- · 용강군 해운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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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8) 평안남도 용강군(龍岡郡) 해운면(海雲面) 일병리(日屛里) 출신이다.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는 확인할 수 없다. 1919년 용강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희생되었다. 용강군은 지리적으로는 만세운동의 1차 발생지인 평양에서 가까워 평양지역의 소식과 운동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여건이었다. 1919년 3월 1일 평양에서 만세시위가 대규모로 발생하였고, 이는 인근 용강에도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3월 2일 용강군 읍내, 3월 3일 진지동(眞池洞)에서 기독교와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시위가 일어났다. 3월 6일에는 관영(官營) 염전이 위치한 광양만(廣梁灣)에서 염부들을 중심으로 1,000여 명의 군중이 참여하는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 만세시위는 일본 거주민과의 충돌과 주재소 파괴 등 적극적인 행위로 이어졌다. 이에 일제는 야간에 군중을 향해 총격을 가하여 해산시킴으로써 용강 일대에 긴장이 고조되었다. 또한 3월 6일 해운면 용반1리((龍磻)1(里)) 김정식(金正植)·김태웅(金泰熊)이 7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온정경찰관주재소를 공격하였으나, 일제 경찰의 사격으로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3월 6일, 동생 김태안(金泰安)이 미곡을 팔기 위해 온정리(溫井里) 장터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시위 군중과 만났다. 시위를 하고 있던 마을 서당 스승 이일승(李日升)이 함께할 것을 권유하자 시위에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외치고 귀가하였다. 만세시위 소식을 접한 일제 군인과 경찰들이 마을에 나타나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체포에 나섰다. 이날 밤 11시경, 아들 김병준(金炳俊)이 서당으로 간 것을 알고 찾으러 갔는데, 마침 서당을 둘러싸고 있던 일본 군경이 총격을 가하여 현장에서 손건주(孫建柱)와 함께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구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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