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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문

金正文

1882 ~ 1910.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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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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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全州)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전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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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8) 전라북도 전주군(全州郡) 우동면(紆東面) 야산리(夜山里, 현 완주군 봉동읍 구암리 구정)에서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82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09년 당시 28세로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으며, 의병들의 항일활동을 지원하였다. 1909년 9월 7일 자신에 집에 찾아온 임재선(林在善)과 이름을 모르는 의병 1명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그들이 맡긴 물건을 보관하여 주었다. 임재선은 서울 출신이라는 것 외에는 활동 내역이 확인되지 않는 인물이다. 임재선이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당시 의병임을 밝혔다고 한 것으로 보아 당시 전주(全州) 인근 지역에서 활동하던 의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일제는 호남 지역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이라는 계획을 세우고 일본군을 전격 투입하였다. 이로 인해 많은 의병들이 죽거나 고초를 겪었다. 임재선 일행도 일본군에 쫓겨 도움을 청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임재선 등이 당시 찾아왔을 때 맡긴 물건들은 무라다식(村田式) 엽총 1정, 화승총 4정, 화약 산탄(火藥散彈) 20발, 화승총 금속 부분품 10개, 창의(倡義) 인형(印形) 1개, 창의장 전령서(倡義章傳令書) 10통 등이었다. 이처럼 의병들을 은신시키고 물자를 보관해 준 것이 발각되어 붙잡혔다. 곧바로 재판에 붙여져 1909년 10월 6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7년을 받았다. 옥고를 치르던 중 1910년 2월 20일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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