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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한

金在漢

186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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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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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居昌)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거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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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가북면(加北面) 해평리(海坪里) 월전(月田)마을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69년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후기의병 시기인 1909년 경상남도 거창·합천(陜川)에서 의병 부대를 조직해 활동하였다. 1909년 경남 합천(陜川)에서 소규모 의병 부대를 조직하여 합천과 거창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펼쳤다. 당시는 1907년 8월 시작된 후기의병의 활동이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위축되고 있던 시기였으며, 이러한 때에 1909년 2월 거창과 삼가(三嘉) 등 고향 인근에 거주하던 심낙준(沈洛俊)·전성구(全聖九)·김화서(金化瑞)·김유준(金有俊)·김문점(金文點)·김상래(金尙來)·오낙삼(吳洛三)·변원화(卞元和)·최남수(崔南守)·전재관(全在寬)·송영수(宋永秀) 등과 의기투합하여 의병 부대를 조직하였다. 의병을 일으킨 같은 해 3월 25일, 합천군 사상면(砂上面) 화양동(華陽洞), 5월 18일 삼가군(三嘉郡) 고현면(古縣面) 장기동(場基洞), 6월 19일 합천군 해인사(海印寺) 등에서 항일 투쟁을 위한 물자와 자금을 징발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전개하다가 1910년 무렵 일제 경찰에 붙잡힌 것으로 추정된다. 1910년 7월 29일 부산지방재판소 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방화죄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1910년 9월 6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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