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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이

金澤伊

1895. 1. 18 ~ 1950.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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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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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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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영덕군 영해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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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5년 1월 18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영해면(寧海面) 성내동(城內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탁이(金卓伊)이다. 1919년 3월 18일 영덕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영덕군 영해면의 만세시위는 병곡면(柄谷面)·창수면(蒼水面)의 시위와 함께 경상북도 내에서도 가장 격렬했던 시위로 평가받는다. 만세시위 발의와 세력 규합 과정에서 이 지역 기독교 조직이 큰 역할을 하였고, 기독교와 유림 세력의 연합이 이루어졌다. 영덕군 지품면(知品面) 낙평동(洛坪洞) 교회 조사(助事)인 김세영이 만세시위를 제의하고, 낙평동 교회 구세군 참위 권태원(權泰源)과 병곡면 송천동(松川洞) 교회 조사 정규하(丁奎河)가 만세시위를 추진하였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병곡면·창수면·축산면(丑山面) 등지의 기독교도들을 동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덕 지방의 대표적 유림 5대 성씨, 즉 권씨·남씨·박씨·백씨·이씨 문중을 규합해 갔다. 영해면 장날인 3월 18일 오후 1시를 기해 만세시위는 시작되었다. 정규하·남여명(南汝明)·박희락(朴羲洛) 등이 선도하는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시위는 평화적인 형태를 띠다가 주임 순사의 강제 해산 시도에 반발하여 폭력적으로 바뀌어 갔다. 시위대의 경찰관주재소, 공립보통학교, 공립심상소학교, 면사무소, 우체소 등의 시설 파괴에도 동참하였다. 시위대의 습격으로 건평 35평의 주재소와 67평의 공립보통학교는 지붕과 기둥 정도만 남기고 거의 모두 파괴되었다. 만세시위는 이튿날인 3월 19일에도 이어졌다. 그러나 오전 10시경 포항의 일본 헌병대가, 오후 5시에는 대구의 보병 80연대가 도착하여 시위대 진압에 나섰다. 이후 시위 주도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이루어졌다. 이때 붙잡혀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 방해, 건조물 손괴, 기물 손괴, 공문서 훼기, 상해,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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