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화
金泰華187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2)
관련 사건
- · 강계군 강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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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2) 평안북도 강계군(江界郡) 어뢰면(漁雷面) 천성동(天成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70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강계 지역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강계는 교통이 불편한 관계로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시위 소식이 늦게 전해졌다. 먼저 기독교인들이 시위를 계획하였다. 영실학교(英實學校) 교사 김경하(金京河)는 3월 하순에 들어 동료 교사이던 정준(鄭儁), 강계읍 교회 장로이자 명신학교(明新學校)에서 회계를 맡은 한봉민(韓奉珉)과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그리고 천도교 강계대교구와 의논하여 연합시위를 준비하였다. 1919년 3월 24일 영실학교에서는 21명의 주도자가 모여 거사에서 책임지고 희생할 것을 다짐하는 의미로 태극기에 서명 날인하였다. 3월 25일에 다시 회의를 열어 거사일을 강계면 장날인 4월 8일 오전 11시로 결정하였다.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는 기독교 측에서 준비하기로 하였다. 2,000매가 넘는 태극기가 제작되었고, 독립선언서는 천도교인 송기숙(宋紀叔)이 갖고 있던 것을 입수하여 전도사인 김창욱(金昌郁)이 맡아 2,000매를 인쇄하였다. 1919년 4월 8일 오전 11시 남장대(南將臺) 예배당 종소리를 신호로 학생들이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집집마다 돌렸다. 이준겸(李俊謙)의 집 앞 광장에서 시위행진이 시작되었는데, 이때 “조선 민족으로서 조선 독립을 축하하기 위해” 참여하였다. 시위 군중은 명운행(明雲行)의 선창으로 소리높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태극기와 악대를 따라 행진하였다. 수천 명으로 불어난 시위 군중이 남문(南門)에서 시작하여 북문(北門)에 이르자 수비대가 발포하여 여러 사람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이날 시위로 주도자를 포함하여 31명이 체포되었는데, 3일 후인 4월 11일에 헌병주재소를 찾아가 자수하였다. 이 일로 일자 미상일에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및 소요죄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19년 7월 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 당하였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 해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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