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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

金泰用

186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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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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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구성(龜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구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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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구성군 구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1868년 평안북도 구성군(龜城郡) 서산면(西山面) 염잠동(廉岑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구성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서 옥고를 치렀다. 구성군은 평안북도 중부지방에 위치하고 있다. 구성의 만세시위는 구성면(龜城面), 방현면(方現面)에 위치한 시장인 남시(南市), 사기면(沙器面)에 위치한 시장인 신시(新市) 등에서 대규모로 일어났다. 천도교인과 기독교인이 1919년 3월 11일부터 4월 1일까지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만세시위가 처음 일어난 곳은 방현면 남시(南市)였다. 장날인 3월 11일 오후 2시경 기독교인 400여 명이 시위행진을 벌였다. 시위대가 남시헌병주재소(南市憲兵駐在所)에 몰려가자 헌병들이 발포하여 3명이 부상당하였다. 3월 18일에는 사기면 신시에서 장날을 맞아 기독교인이 이끄는 300여 명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31일에는 천도교인의 주도로 구성면, 남시, 신시에서 동시에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종수(李種秀)가 교구장을 맡고 있는 구성천도교구가 구성군에 사는 천도교인을 일제히 동원하였다. 구성면에서는 3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면내로 몰려 들어오자 경찰은 즉시 출동하여 강제 해산을 꾀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면서 시위 군중 중에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다음 날인 4월 1일에도 세 곳 모두에서 다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구성면에서는 전날 만세시위를 벌인 시위대가 다시 모였다. 3,000명의 시위 군중이 면소재지로 들어와 만세시위를 벌였다. 경찰과 헌병의 제지가 역부족인 가운데, 오후 5시에야 부상자 3명을 내고 해산하였다. 1919년 3월 31일과 4월 1일에 걸쳐 일어난 구성면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혔다. 일자 미상일에 신의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과 소요로 유죄를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1919년 7월 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을 파훼하여 1심 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다시 “3월 1일 조선독립선언서에 우리 조선의 군주 국권이 회복된다는 내용이 있어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만세를 부른 것이 법률에 저촉된다고 선고한 1심과 2심의 판결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그 해 9월 1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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