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泰晏
泰晏1902. 12. 14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용강군 해운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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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8) 1902년 12월 14일 평안남도 용강군(龍岡郡) 해운면(海雲面) 일병리(日屛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학생으로 3월 6일 해운면 온정리(溫井里)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평양에서는 기독교와 천도교인들의 주도하에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만세시위는 인근 용강 지역으로 확산되었으며, 지역 유림 역시 이에 호응하면서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3월 2일 용강 읍내에서, 3월 3일 진지동(眞池洞)에서 만세시위가 이어졌다. 또한 염전을 두고 한인과 일본인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던 광양만(廣梁灣)에서 3월 6일 1천여 명의 군중이 참여한 시위가 벌어져 일본 군경과 충돌하고 일본 군경의 총격으로 사망자가 발생했다. 3월 6일에는 해운면 용반1리(龍磻)1(里)에서 김정식(金正植)·김태웅(金泰熊) 등이 시위를 주도하여 70여 명의 군중을 이끌고 용반2리·궁산리(弓山里)·일병리를 거쳐 온정리의 헌병주재소로 나아가 투석전을 전개하다가 일시 철수하였다. 이들은 다시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하여 40여 명의 군중이 부근 산중에 집결하였으나, 출동한 일본 헌병에 의해 총격을 받아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때 곡물을 팔러 온정리 장터에 나갔다가, 스승인 이일승(李日升)이 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하라고 권유하여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일본 헌병의 진압에 시위대가 흩어지자 본가로 귀가하여 피신하였다. 이날 밤 11시경, 일본 군경이 집까지 추격하여 왔고, 아들 김병준(金炳俊)을 찾던 형 김태황(金泰璜)과 동행인 손건주(孫建柱)가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숨어 지내다가 1919년 3월 14일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일자 미상일에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5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3월을 받았다. 그러자 미성년자인 자신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그 해 6월 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구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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