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옥
金鎭沃1928. 1. 8 ~ 1980. 8.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순국당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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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6) 1928년 1월 8일 경남 부산부(釜山府) 범일정(凡一町)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유우(金有佑)를 사용하였다. 1940년대 부산의 비밀결사 단체인 순국당(殉國黨)에서 행동책, 일본유학생책으로 활동하였다. 순국당은 1943년 봄, 부산실천상업학교(釜山實踐商業學校) 재학생인 차병곤(車炳坤)과 부산진국민학교(釜山鎭國民學校) 동창인 박정오(朴楨五), 신정호(辛正浩) 등이 만든 윤독회(輪讀會)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김수성(金守性)·전창호(田昌浩)·정오연(鄭五然) 등이 참여하였고, 1944년 5월 신정호의 집에서 총 13명의 인원으로 순국당이 결성되었다. 이들은 행동강령으로 ‘민족의 독립과 주권 회복을 위해 투쟁할 것’을 삼았다. 행동 목표로는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 총독 처단, 일본 군사 시설 파괴, 일본인 집단 거주지의 방화, 은행 습격, 미군 공습 시 산불 놓기 등이었다. 이 같은 행동 목표는 순국당이 단순하게 한국인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한다거나 교내에 머무르는 학생운동 조직이 아니라 독립군적인 조직으로 전환해 갔던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확한 순국당의 가입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일본 야마구치현(山口縣) 홍성중학교(鴻成中學校) 3학년 재학 중에 순국당의 행동책과 일본유학생책을 맡아 활동하였다. 1944년 7월에 들어서면서 국내의 독립운동이 어려워지자, 순국당원들은 만주로 이동하여 독립군에 합류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에 차병곤과 윤창석이 선발대로 먼저 함북 길주(吉州)에 도착하였고, 이어 박태권과 김수성(金守性)이 합류하였다. 하지만 7월 25일 부산에서 순국당의 존재가 일제 경찰에 포착되어 박정오가 붙잡혔다. 길주에서는 7월 28일, 결국 8월 1일까지 순국당원 전원이 붙잡히고 말았다. 이와 관련되어 8월 26일 일제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8월 1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정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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