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烘辰
烘辰1884. 1. 2 ~ 1951. 7.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서산군 대호지면
- · 정미면 천의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84년 1월 2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재 당진시) 두산리(杜山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부안(扶安)이다. 대호지면의 독립만세시위는 지역의 주요 인사들이 단합하여 상당히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추진되었다. 대호지면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 이두하(李斗夏), 남계창(南啓昌), 남상직(南相直), 남상락(南相洛) 등 유생들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만세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이후 서산 지역에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위 열기가 고조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雲), 강태완(姜太玩), 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주도 인물들은 만세시위의 파급력을 높이기 위해 시위 장소로 대호지면이 아닌 순사주재소가 있는 정미면(貞美面) 천의리(天宜里)의 천의장터를 선택하고, 장날인 4월 4일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송재만을 주민 동원 책임자로 임명하고, 리(里) 단위의 연락망과 신체 건강한 청년들을 선봉대로 편성하였다. 면사무소 직원들은 면사무소의 시설과 행정력을 이용하여 장터에서 배포할 「애국가」와 「독립선언서」를 준비하고, 면장 명의의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서를 작성하여 각 마을에 통보하였다. 이 문서는 “4월 4일 호(戶)별로 1명씩 도로 보수공사에 출석하라”는 내용으로 주민들의 참여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조치였다. 거사 당일인 4월 4일 연장을 지참하고 면사무소에 나갔다. 이 자리에서 면장 이인정으로부터 실제 목적은 도로보수가 아니라 독립만세시위이며 천의장터로 가서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이라는 연설을 들었다. 이에 공감하고 시위 대열에 동참하여 독립만세를 연호하며 7km 떨어진 천의장터를 향해 행진하였다. 시위 대열이 천의장터에 도착하자 시장에 나온 사람들도 속속 동참하여 시위대의 규모는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과 함께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며 천의주재소의 순사들을 무력화시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사태가 위급해지자 일제 경찰은 당진경찰서의 경찰력을 급파하였다. 이들이 도착하여 발포를 감행하여 4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분노하여 군중들과 함께 천의주재소로 달려갔다. 송재만의 지휘에 따라 주재소 습격에 참여하여 경찰을 구타하고 주재소를 완전히 파괴한 후, 해산하여 귀가하였다. 이후 홍성헌병수비대에 붙잡혔다. 1919년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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