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烘壽
烘壽1889. 9. 10 ~ 1960. 10.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서산군 대호지면
- · 정미면 천의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89년 9월 10일 충남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재 당진군) 두산리(杜山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부안(扶安)이다. 1919년 4월 4일의 대호지면 독립만세운동은 유림(儒林), 면사무소 직원, 천도교도, 지역 유지 등 지역 내 주요 인사들이 연합하여 주도하였다. 대호지면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 이두하(李斗夏), 남계창(南啓昌), 남상직(南相直), 남상락(南相洛) 등 유생들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만세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이후 서산 지역에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위 열기가 고조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雲), 강태완(姜太玩), 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주도 인물들은 만세운동의 거사일을 정미면(貞美面) 천의장터의 장날인 4월 4일로 결정하였다. 천의장터가 있는 천의리(天宜里)에는 순사주재소가 있기 때문에 일제를 향해 독립 의지를 명확히 밝히기 위함이었고, 장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독립만세운동을 알리는 동시에 이들의 참여를 독려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세운동의 구체적인 준비는 송재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각 리(里)별 연락망을 구성하고, 청년들을 뽑아 선봉대를 편성하였다. 한편, 면사무소의 시설과 행정력을 동원하여 주민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면장 명의의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서를 작성하여 각 마을에 통지하였다. 가호별로 1명씩 도로 보수공사에 출석하라는 연락을 구장(區長)으로부터 받고 4월 4일 아침 농기구를 소지하고 면사무소 앞으로 갔다. 600여 명의 주민들이 집결한 가운데 이인정과 유생들로부터 주민들을 모이라고 한 것은 도로 보수가 아니라, 실제 목적은 독립만세운동이라는 연설을 듣고 공감하여 만세운동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주도 인물들의 지휘에 따라 독립만세를 외치며 7km 떨어진 정미면 천의장터로 행진하였다. 천의장터로 가는 길목마다 사람들이 시위에 합류하였고, 천의장터에서는 정미면의 주민들까지 합류하여 시위대의 규모가 1,0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만세시위를 중단시키려는 천의주재소 순사들에 대항해 군중과 함께 맞서 이들을 무력화시키고 시장 곳곳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사태가 위급해지자 일제는 당진경찰서의 경찰들을 지원 파견하였는데, 이들의 발포로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분노하여 송재만의 지휘에 따라 천의주재소 습격에 참여한 후 돌을 던지고, 일본 경찰을 구타하는 등 주재소를 완전히 파괴하였다. 만세시위 지도부로부터 이후 제2차 거사에 대한 별도의 연락이 있을 것이라는 방침을 듣고 해산하여 귀가하였다. 그러나 제2차 거사가 일어나기 전에 일제의 홍성헌병수비대가 대호지면으로 출동하여 만세운동 참여자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 검거에 나서면서 붙잡혔다. 1919년 4월 25일 서산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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