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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세

金弘世

1899. 10. 17 ~ 1968.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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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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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용강(龍岡)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용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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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6)

관련 사건

  • · 서화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6) 1899년 10월 17일 평안남도 용강군(龍岡郡) 서화면(瑞和面) 죽본리(竹本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향리에 거주하며, 3월 6일 서화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평남 서남단에 위치한 용강군의 독립만세시위는 3월 초순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3월 1일 서울과 평양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난 다음날인 2일, 용강면과 지운면(池雲面) 진지동(眞池洞)에서 일어난 것을 시작으로 장날을 이용하여 기독교회나 천도교구가 있거나, 기독교인이나 천도교인이 많은 동네 곳곳에서 열렸다. 3월 4일에는 서화면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죽본리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만세시위를 벌였고, 석치리(石峙里)에서는 신흥학교(新興學校) 김대엽(金大燁)·김대혁(金大赫)의 주도로 교사와 학생 30여 명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각각 죽본리와 석치리를 돌며 행진하였다. 면소재지인 자복리(自福里)에 위치한 당치시장(堂峙市場)에서도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자복리에서는 3월 6일에 다시 만세시위가 이어졌다. 이날 김두원(金斗源)·장병삼(張炳三)으로부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자는 제의를 받고 이들과 함께 신흥학교 학생 30여 명을 이끌고 자복리로 건너왔다. 자복리에서 서당훈장 김치선(金致善)이 인솔한 서당 학생 15명과 합류하여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시위대는 태극기를 앞세우고 자복경찰관주재소 앞에서 만세를 부른 뒤 주재소 문과 처마에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이날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7일 평양지방법원 진남포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이 해 5월 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 당하였다. 이에 다시 “조선이 독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 만세를 불렀을 뿐이라 하등의 죄가 아니다. 보안을 방해한 바가 전혀 없어 불복한다”고 항변하며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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