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現洙
現洙1862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덕천군 덕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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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6) 평안남도 덕천군(德川郡) 풍덕면(豊德面) 척장리(尺長里) 출신이다. 1919년 당시 판결문에 의하면 58세로 1862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만세운동 당시 고향에 거주하며, 3월 5일부터 7일까지 전개된 덕천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평남 북부에 위치한 덕천군은 동쪽은 영원군, 서쪽은 개천군, 남쪽은 맹산군·순천군, 북쪽은 묘향산맥을 경계로 평안북도 영변군과 접해 있다. 교통이 불편한 벽지였던 덕천군의 만세시위는 덕천면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덕천면의 만세시위는 천도교계와 기독교계의 연합으로 일어났다. 덕천 천도교구의 공선원(共宣員)인 현성재(玄聖才)가 덕천면에 자리하고 있는 덕천교회(德川敎會)에 연락하여 시위를 준비하였다. 1919년 3월 5일 덕천면 시장에 30여 명의 천도교인과 기독교인이 모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시위대가 행진을 하면서 숫자가 늘어 100여 명이 되었다. 이때 이용규(李龍奎)·이광수(李光洙) 등과 함께 100여 명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하였다. 3월 6일에는 덕천헌병분대(德川憲兵分隊) 앞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때 전날의 시위로 헌병분대에 붙잡혀 구금 중이던 허선홍(許善弘)·장찬봉(張燦鳳)·김정기(金正基) 등이 시위대의 만세 소리를 듣고 곧바로 탈출하여 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7일에도 다시 만세시위가 재개되었다. 약 500명이 만세를 외치기 시작하여 시위 군중이 600명으로 늘어났다. 이 날 시위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붙잡혀 기소되었다. 이 일로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1919년 6월 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 당하였다. 그러자, 다시 “만국평화회의에서 독립 승인을 약속하고 서울에서는 정의·인도·생존을 위한 독립선언이 있기에 스스로 국권 회복을 기원하며 만세를 불렀는데 보안법 위반이라니 부당하다”며 상고하였으나, 그 해 7월 2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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