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赫根
赫根186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이천군 낙양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67년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용포면(龍浦面) 성거리(成巨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황해도 신계군(新溪郡) 촌면(村面) 궁암리(宮岩里)에 거주하며 천도교인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이천군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일 천도교 평강교구(平康敎區)의 장선처(張善處)가 독립선언서 15매를 이춘호(李春浩)에게 전달하면서 계획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만세시위는 4월 4일부터 전개되었다. 4월 4일 아침 이천군 낙양면(樂壤面) 내낙리(內洛里)에 있는 천도교인 김응제(金應濟)의 집에서 김응제·김병하(金炳河)·김이순(金利淳)·이여종(李呂鍾) 등과 모임을 갖고 낙양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이날은 면 소재지인 지석리(支石里) 장날로,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결정하고 대형 태극기 2개를 제작하였다. 이때 김응제로부터 이두영(李斗榮)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시장으로 가서 군중을 선동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1919년 4월 4일 오후 1시 경 지석리 시장에는 5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낙양면 주민은 물론 인접한 강원 평강군과 황해 신계군에서도 참여하였다. 이두영과 함께 군중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에 군중들도 호응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대부분 내락리와 지석리, 지하리(支下里) 등에서 온 주민들이었다. 김응제, 이두영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는데, 시위대는 오후 10시경까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이어갔다. 다음 날도 만세시위가 계속되었다. 새벽 5시에 모인 60여 명의 시위대는 지하리에 있는 헌병주재소로 향하였다. 이때도 김병하, 김응제, 김이순, 이두영, 이여종 등과 함께 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대는 헌병주재소에 돌을 던졌고, 헌병들과 곤봉으로 육박전을 벌였다. 그러자 헌병이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를 시작하였고, 그 과정에서 사망자 5명과 부상자 3명이 발생하였다. 시위 과정에서 붙잡혀 1919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7월 1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나의 행위는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 인도에 근거하여 의사 발동한 것으로 번죄가 아니다”라고 항변하며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0년 4월 28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