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수
金海守1896. 3. 22 ~ 1968. 3.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3)
관련 사건
- · 고성군 구만면
- · 회화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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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3) 1896년 3월 22일 경상남도 고성군(固城郡) 개천면(介川面) 예성리(禮城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해수(金海秀)·김해제(金海濟)를 사용하였다. 1919년 고성군 구만면(九萬面)과 회화면(會華面)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고성지역에서는 고성 읍내에서 3월 17일 만세운동을 계획하다가 비밀이 누설되어 주도 인물이 붙잡히는 사건이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과 별도로 고성군 구만면에에서는 청년들이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시위일을 배둔시장 장날인 3월 20일로 정하고 필사한 독립선언서 요약본을 비밀리에 12개 마을에 전하는 한편, 회화면에도 연락하여 군중 동원을 준비하였다. 구만면 국천사장(菊川沙場)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킨다는 듣고 이날 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20일 오후 1시경 거사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퍼지자 개천리(介川里)·마암리(馬岩里) 주민 등 500여 명 등과 함께 국천 모래사장에 모였다.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주도 인물들이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배둔리시장(背屯里市場)으로 향하였다. 이 정보를 입수한 일제 헌병대는 무장한 상태에서 시위 대열을 기다리고 있다가 저지하였으나 시위 군중은 나팔을 불어대며 저지선을 뚫었다. 구만면의 시위대가 배둔시장에 도착하였을 때, 전날 연락을 받은 회화면 시위대가 모여 있었다. 구만면과 회화면 주민이 합세하면서 시위 인원은 700~800명으로 늘어났다. 시위대는 시장을 행진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한 후 구만면으로 돌아왔다. 밤늦게 구만면으로 돌아온 시위대는 ‘한인관리퇴직권고문(韓人官吏退職勸告文)’을 구만면사무소 정문에 1매를 붙인 후 해산하고, 다음날 이 권고문을 각 지방의 관공서에 발송하였다. 시위 당일 주도 인물을 붙잡지 못한 일제 헌병은 재향 군인까지 동원하여 단속하였는데, 이때 다른 동지들과 함께 구만면 국천 모래사장 시위와 배둔장터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붙잡혔다. 1919년 5월 24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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