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漢俊
漢俊1884. 1. 27 ~ 1956. 11.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울산군 언양시장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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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84년 1월 27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상남면(上南面) 거리(巨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울산군 언양읍 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1919년 4월 2일 언양읍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는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해들은 천도교 계통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천도교 울산교구에서는 7인의 교구 중진회의를 열고 언양에서도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주도 인물들은 4월 2일 언양 장날을 거사일로 정한 후 밤새워 독립선언문을 등사하고 태극기를 만드는 등 비밀리에 거사를 준비하였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펴져나가자 언양 지역의 일본 경찰은 사전예방 차원에서 예비검속령을 발표하여 몇몇 주도 인물을 조사하는 등 경계를 강화하였다. 언양 장날에 만세운동이 있을 것이라는 계획을 전해 듣고 시위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4월 2일 11시 울산군의 상남·중남·삼동·두동·두서의 각 면과 양산 하북면에서 수많은 군중이 모여든 가운데 시장 한 모퉁이에서 김성진(金聲振)이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대한독립만세’라고 대서특필한 깃발이 높이 게양되면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운집한 시위 군중은 삽시간에 1,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 군중을 이끌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일제 경찰이 공포를 쏘며 시위 선봉대를 붙잡아 주재소로 끌고가자, 격노한 시위 군중과 함께 주재소로 가서 석방을 요구하며 투석전을 벌였다. 시위 군중에 비해 수적 열세에 처한 경찰은 총격을 가하였고 이로 인해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언양주재소 앞에서 충돌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만세시위는 해가 질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날 시위 현장에서 붙잡혀, 1919년 4월 10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 항소하여 그 해 5월 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은 취소되었으나 형량은 6월이 유지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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