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이
金鶴伊1896. 2. 20 ~ 1922. 3.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성주군 선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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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6년 2월 20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선남면(船南面) 동암동(東岩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일 성주면 경산동(京山洞)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성주 지역의 만세운동은 3월 27일 선남면 선원동(仙源洞)에 사는 이현기(李玄琪)와 가천면(伽泉面) 동원동(東元洞)에 사는 이상해(李相海)가 주도한 만세시위가 발단이 되었다. 그러나 이날의 만세시위는 크게 확대되지 못하였고, 본격적인 만세시위의 전개와 확산은 4월 2일 성주면 만세시위가 계기가 되었다. 이날의 만세시위는 유림과 기독교 세력에 의해 준비되었다. 유림 측에서는 월항면(月恒面)의 이기정(李基定)이 초전면(草田面) 정산동(亭山洞)에 거주하는 송인집(宋寅輯)과 더불어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이후 군 내 유력 양반인 성대식(成大湜)·송수근(宋壽根)·송우근(宋祐根)·장석영(張錫英)·송규선(宋圭善)·송훈익(宋勳翼)·김희규(金熙奎)·이봉희(李鳳熙)·송문근(宋文根)·송천흠(宋千欽) 등을 규합해 갔다. 기독교 측에서는 성주읍내 교회 조사(助事) 유진성(兪鎭成)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옥화동(玉化洞) 기독교 북장로교회 조사 김재곤(金在坤), 영수(領袖) 홍진수(洪鎭洙)에게 만세운동을 권유하여 동참을 이끌어 냈다. 이때 유진성의 권유로 기독교도로서 교회 신도 김석규(金錫圭)·김상직(金尙直) 등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가하게 되었다. 4월 2일은 성주읍 장날이었다. 이날 오후 1시, 성주면 경산동 관제묘(關帝廟) 뒷산에 모인 기독교인들이 먼저 태극기를 흔들며 성주장터를 향해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호응하여 시장에 모여 있던 유림 측 인사 60여 명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 경찰이 주도 인물 몇 명을 붙잡아 가자 군중은 분노했고 그 숫자도 크게 증가하였다. 경찰의 발포로 시위대는 일시 흩어졌으나 해가 진 후 다시 서북쪽 언덕에 모닥불을 피우며 만세시위를 이어갔다. 이 날 시위에서 이태희(李兌熙) 등 3명이 총탄에 맞아 사망하고 이봉희 등 7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때 일제 군경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2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풀려난 후 얼마 되지 않아 고문의 후유증으로 1922년 3월 9일 2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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