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學鳳
學鳳1898. 2. 7 ~ 1945. 6.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경주군 노서리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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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8년 2월 7일 경상북도 경주군(慶州郡) 경주면(慶州面) 서부리(西部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21세였으며, 경주면 노서리(路西里)에 거주하였다. 기독교인으로 직업은 성서행상聖書行商이었다. 1919년 경주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들의 독립선언 이후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신문 기사를 통하여 알았다. 또한 만국강화회의와 민족자결주의 제창 등 국제 정세의 변동을 주시하며 이를 독립의 시기가 도래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에 자극받아 경주의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였다. 3월 12일 밤 노동리(路東里) 교회(현 경주제일교회)에서 박래영(朴來英)·박문홍(朴文弘)·조기철(曺基哲)과 함께 모임을 갖고 만세운동 계획을 세웠다. 경주 읍내의 큰 장날인 3월 13일을 거사일로 잡고, 경주 읍내시장에서 시위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같은 날 밤에 박문홍의 집에서 조기철과 함께 태극기 약 300장 제작에 착수하였다. 이때 최수창(崔壽昌)·이승태(李承泰)가 와서 함께 태극기 제작을 마쳤다. 3월 13일 아침 비밀리 사람들에게 이를 나누어주며 시간과 장소를 알리는 등 시위 준비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만세시위 계획을 일본인 사업가가 일제 경찰에 밀고하면서 사전에 발각되자, 박문홍·박래영·조기철 등과 함께 붙잡혀 3월 13일의 만세시위는 실패하였다. 이후 붙잡혀 1919년 4월 15일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고, 미결기간을 포함하여 1년 여 동안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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