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타관
金他官1902. 6. 6 ~ 1975. 2.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김천군 개령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902년 6월 6일 경상북도 김천군(金泉郡, 현 김천시) 개령면(開寧面) 동부동(東部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향리에서 농사를 짓다가 4월 6일 동부동 뒷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초 서울과 평양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지역 주민들은 3월 하순과 4월 초순 자체적인 만세운동을 계획하여 실행하였다. 개령면 동부동에서도 시대 조류에 맞춰 자체적인 만세운동의 필요성을 놓고 지역 주민 사이에 뜻이 모아지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주민들은 3월 24일, 4월 3일, 4일, 6일 등 4차례에 걸쳐 동부동 뒷산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실행에 나섰다. 만세운동의 조직과 활동은 때마침 거행된 마을 행사를 분기점으로 자연스레 주민 회합이 이루어지면서 급속도로 진전되었다. 1919년 3월 24일 개령면에서는 개령공립보통학교 졸업식과 은창서(殷昌瑞) 집안의 혼인 잔치가 있었다. 수많은 마을 주민이 운집한 결혼식 피로연 자리에서 김태연(金泰淵)·허철(許喆)·전종수(全琮洙)·최영돈(崔永敦) 등 시위 주도자들은 참석 주민을 향해 독립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밝혀 관심과 호응을 이끌어냈다. 또한 전국 각지에서 일제 지배의 멍에를 벗어던지려는 만세시위가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데 우리 고장에서만 일제에 굴종하여 침묵하는 것은 수치라는 사실을 일깨우며 주민의 각성을 촉구하였다. 이에 개령면 지역의 자체적인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찬동한 수많은 마을 사람들은 그날 저녁 시위 대열을 형성해 마을 뒷산인 유동산을 향해 행진한 후 정상에서 수차례 독립만세를 외쳤다. 뒤이어 4월 3일 밤에는 우준식(禹雋植)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뒷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치며 자신들의 의기를 드러냈으며, 다음 날에도 문학이(文學伊)·문정환(文廷煥)·홍득린(洪得麟) 등이 뒷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운동 열기를 이어나갔다. 이러한 지역 주민의 지속적인 만세운동에 고무되어 동료들과 함께 후속 시위를 준비하기로 계획하였고, 4월 6일 개령면 동부동 마을 뒷산에서 거사를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이날 밤 동부동에 사는 주민들과 함께 횃불을 들고 마을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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