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七峯
七峯1901. 3. 19 ~ 1961. 10.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의성군 안평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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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6) 1901년 3월 19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안평면(安平面) 마전동(馬轉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의성지역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의성군에서는 1919년 3월 12일부터 4월 3일까지 총 7개 면에서 21차례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 중에서 안평면의 시위는 비안면比安面 쌍계동雙溪洞의 만세운동과 더불어 의성군 만세운동의 두 축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시위의 규모가 컸다. 안평면에서는 3월 15일부터 19일까지 매일 만세운동이 일어났으며, 주로 대사동교회의 교인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다른 주민들이 합세하는 양상을 보였다. 1919년 3월 15일 저녁 7시경 대사동(大司洞) 우리골(尤利谷)의 마을 주민 60~70명이 만세를 외침으로써 안평면 만세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3월 16일에는 50~60명의 교인과 주민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3월 17일에는 400여 명의 군중이 시위를 벌였다. 다음날에도 300여 명의 군중이 안평면 곳곳을 돌아다니며 만세를 외쳤다. 3월 19일에는 안평면 대사동에서 출발한 시위대가 창길동(倉吉洞)·괴산동(槐山洞)·도옥동(都玉洞) 등 각 마을을 지나 봉양면(鳳陽面) 도리원(桃李院) 시장으로 향하였다. 이날 시위는 절정에 달하여 무려 1,000명 정도의 군중이 모였다. 시위대는 도리원경찰관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면서 일본 경찰과 충돌하였다. 이때 권해운(權海雲)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3월 15일 만세운동의 주도 인물 중 한 명이던 이화실(李華實)의 권유로 3월 16일 밤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두칠(李斗七)·강백이(姜伯伊)·강석선(姜石先) 등과 함께 마전동에서 기도동(箕道洞)까지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이후 붙잡혀 1919년 5월 2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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